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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5-03 (일) 12:32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5_요한복음_제7강-1(이인구).hwp (55KB) (Down: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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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7강]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015년 요한복음 제7강                                                                        이인구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 요한복음 5:1-29
요절/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도와 파키스탄, 아프리카 몇 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소아마비 박멸을 선언하였습니다. 그것은 미국인 의사 조나스 솔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백신을 개발하여 자신이 직접 맞아가면서 백신효능을 검증하였습니다. 세계 유명한 제약회사들이 그의 소아마비 백신특허를 사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하고 백신을 무료로 공개하며 말했습니다. “태양을 특허 낼 수 없듯이 인류를 위한 이 백신도 특허 낼 수 없습니다.” 어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에 절망의 병에 걸린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 백신을 통해 희망을 찾게 됐습니다. 2000년 전 소아마비보다 더 심한 인생의 죄의 병에 걸려 누워 절망하는 인생들에게 예수님께선 태양의 빛처럼 찾아오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 병에서 일어나지 못하며 절망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둠속에서 귀를 막고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경청함으로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진정한 희망과 행복을 얻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때는 유대인의 명절로 유대인들은 명절이 되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데 가신 곳은 성전이 아닌 ‘베데스다’라는 연못이었습니다. 베데스다는 길이가 약 120m를 넘는 ‘자비의 집’이란 뜻을 가진 연못이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베데스다 주변으로 많은 불치병자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이 때 가장 먼저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고치지 못한 불치병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안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 천사가 올지 모르고 또 천사가 단 한명만 낫게 한다는 것입니다. 천사에게 선택받기 위해선 최고의 정보력과 순발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장애가 덜 한 사람, 돕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많이 가진 환자가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자비롭고 공평한 연못 같지만 실상은 가장 무자비하고 살벌한 곳이었습니다. 자기가 낫기 위해 다른 사람을 짓밟고 뛰어가야 하는 곳 그래서 한번 천사가 왔다 가면 이전보다 더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곳이었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이 더러운 연못”이라 불평하면서도 병자들은 이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곳을 떠나면 아예 그 작은 희망마저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베데스다는 인간세상의 축소판입니다. 평상시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휴머니즘의 웃는 얼굴을 하고 서로 돕고 삽니다. 하지만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혀 경쟁상대가 되면 추악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며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얼마 전 9급 공무원 시험에서 경쟁률이 평균 51대 1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교육행정분야는 734대 1이었습니다. 10명 모집하는데 7343명이 지원했습니다. 잔인한 4월에 청춘들은 너무나 좁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위해 싸우며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한 작가(볼프 슈나이더)는 이런 현실을 표현했습니다. “지구는 좌절의 별이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 사람들은 1등만을 기억합니다. 세상역사는 승리자들을 위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점점 더 치열해지는 삶속에서 우리는 승리보다는 패배자일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베데스다에 가장 먼저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빨리빨리’를 외치며 순발력과 정보력을 키우지만 항상 물만 먹고 돌아옵니다. 언제부터인가 힐링이란 말이 대세가 됐습니다. 그것은 무한 경쟁에 병들고 지치고 상처받은 오늘날 사람들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베데스다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에서도 한 사람, 베데스다의 가장 고참이자 영원한 고참인 38년 병자를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전부터 병자였습니다. 그도 처음 왔을 땐 같이 왔던 친구나 가족들의 도움으로 넘버 10안에 드는 정보력과 순발력을 가졌던 가능성 있는 병자였습니다. 하지만 몇 번 실패하면서 친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떠났고 형제들과 부인까지 밤에 몰래 떠나간 후 마지막으로  말없이 항상 옆에서 지켜줬던 부모님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극심한 절망과 고독 속에서 천사가 나타났을 때 마지막 죽기를 각오하고 몸을 굴려 연못에 들어갔지만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밀려 나온 후 “정말 죽을 뻔 했다”며 그 후 다시는 천사가 와도 물에 뛰어들 용기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38년 동안이나 베데스다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38년 동안이나 실패한 그에게서 다른 병자들도 부정탄다며 가까이 오기를 꺼렸습니다. 그는 베데스다에서 영원히 다른 이들의 들러리였고 아무 쓸모없는 존재였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잊혀진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누워있는 그에게서 38년 동안의 수많은 실패와 좌절과 상처의 흔적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랜 병자를 진단 후 내린 첫 번째 처방이었습니다. 낫기 위해 38년 동안이나 거기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이미 스스로 낫기를 포기한 병자였습니다. 오랜 실패가운데 낫기를 포기하면서 나음 받아야 하는 병자임을 잊었습니다.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갖는 게 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였습니다. 낫고자 하는 소원이 없으면 항생제로 목욕을 해도 낫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먼저 병자에게 나을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심으셨습니다.
  요사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포기시리즈가 있습니다. 처음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시대가 있었다가 더욱 현실이 어려워져가면서 집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5포시대가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취업과 꿈까지 포기하는 7포를 말하는 젊은이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가 꿈까지 포기하려고 합니다. 물론 너무나 어려운 경쟁 속에서 꿈을 붙들고 있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면서 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을 것이고 차라리 꿈을 포기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이가 꿈까지 포기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젊은이도, 살아있는 인생도 아닐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치에 투옥되었던 빅터 플랭클이란 학자는 극한의 포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사이의 차이점을 연구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살고, 희망을 잃은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희망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먼저 38병자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붙들도록 하셨습니다. 그렇게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병자를 낫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질문에 38병자가 대답했습니다. “네, 저를 고쳐주세요. 저는 38년 동안 오직 낫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병자의 말속에는 38년 동안 자신을 밟고 간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의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형편에 대해 변명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고 그들이 자기 뜻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원망하다가 절망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는 몸만 병자가 아니라 마음까지도 깊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요사이도 많은 이들이 이 병자 같은 말을 합니다. 자기를 조금만 밀어주고 끌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금방 성공할 수 있을텐데. 사람들이, 또 세상이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입만 열었다 하면 부모에 대한 원망,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저주,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피해의식을 쏟아 놓습니다. 하지만 사실 아무리 자립심을 가지고 피나는 열심과 의지로 노력한다 해도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가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가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에게 더 큰 문제는 그가 가진 희망이 진정한 희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데스다는 그에게 진정한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도 고통스런 것은 베데스다 같은 헛되고 거짓된 희망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병자는 그에게 예수님이 해주실 수 있는 것 역시 자신을 도와 베데스다에 가장 먼저 들어가도록 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마치 해가 떠올라 온천지를 비추는데 집안의 커튼을 걷지는 않고 어둡다고 촛불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만난다면 더 이상 다른 곳에서 희망을 찾아 헤매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참된 희망이요 베데스다이시기 때문입니다.
  38병자의 대답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이 말씀은 3마디의 명령형 동사로 되어있습니다. “일어나라, 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 예수님께선 헛된 희망을 붙들고 의존심과 운명주의의 죄 가운데 빠져 죽은 자와 방불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지만 병자를 엎고 베데스다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선 38병자의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치유해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일어서기도 불가능한 병자에게 일어나 지금까지 누워있던 자리까지 들고 걸어가라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창조주로서의 예수님의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하나님께선 인간을 쓸모없는 흙에 하나님의 영을 불어넣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만물을 개척하며 정복하며 다스리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죄 가운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영이 죽은 육체가 됨으로 다시 쓸모없는 흙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잃어버림으로 희망도 잃고 사명도 잃어 정복하고 다스려야 될 피조물에 지배받는 인생이 됐습니다. 피조물을 희망으로 삼고 섬기는 인생이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누워 있는 자리에서 일으키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병자가 베데스다의 헛된 희망을 버리고 다시 일어나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도전하도록 도우셨습니다. 다른 사람 탓하지 않고 세상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신세를 탓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일어서도록 도전하셨습니다. 일어나서 자신의 죄의 자리를 들고 걸어가도록 도전하셨습니다.
  이때 과연 어떤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예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일어설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을 주셨지만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병자 그 사람의 몫입니다. 그 사람의 의지요 선택입니다. 그가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 비로소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의 내면은 지난 38년 동안 원망과 불평과 패배의 상처로 겹겹이 쌓여있었습니다. 그 두꺼운 죄악의 껍데기들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도 잊은지 오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그의 내면 깊숙이 묻혀 있던 하나님의 형상을 깨웠습니다. 38년 동안 수도 없이 도전했다 실패한 상처의 기억들과 자신을 떠났던 사람들의 저주의 말과 자신을 무시했던 많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의 기억이 맴돌지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과거의 죄악의 자리를 들고 마침내 걸어갔습니다. 지금 천사가 나타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와서 그를 업고 베데스다에 1등으로 뛰어간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그의 인생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주심으로 자신의 운명에 도전해 믿음으로 일어서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베데스다에 목을 매고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의 베데스다에 들어가면,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좋은 배우자와의 결혼에 골인하기만 하면, 또 로또복권에 당첨되기만 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일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베데스다에 들어가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베데스다 못가에서 평생 쓴 물만 마시며 자신을 인생의 loser라고 절망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막상 경쟁을 뚫고 들어간 winner들은 행복합니까? 얼마 전 자살한 한 기업가는 13살 때 서울에 올라와 맨손으로 엄청난 인간적 의지와 노력으로 잘나가는 대기업 회장이자 국회의원까지 된 자수성가형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자신의 형편을 견딜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남긴 쪽지에 날고 긴다는 사람들(winner들)이 한 순간에 추락하지 않을까 떨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최고의 베데스다로 불리는 로또복권도 1등으로 당첨된 사람의 인생을 추적하면 당첨되기 전보다 더 불행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세상의 베데스다는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뿐 아니라 들어간 사람에게도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하는 거짓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희망이요, 진정한 베데스다입니다.
  그러면 참된 희망이요 베데스다 되신 예수님께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세상 희망을 끊고 중세시대처럼 수도원에 들어가야 됩니까? 세상의 베데스다는 엄청난 노력과 의지로 경쟁가운데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38병자처럼 먼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마치 어둠과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이에게 아침 태양이 비춰오는 것처럼 먼저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숨지 말고 믿음으로 마음을 열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24, 25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 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영적 생명, 진정한 생명)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죽은 자도 살아나게 됩니다. 죄로 인해 죽은 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더 이상 세상 베데스다에 울고 웃는 죄의 종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 베데스다에 목을 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이미 인생에서 가장 귀한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얻었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세상 베데스다에서 살지만 들어가기 위해 목숨 걸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며 열매 맺는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은 어떤 직장에 다니든,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요셉과 같은 종의 위치든 다니엘과 같은 리더의 위치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기 위해 기쁨과 감사로 성실하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으로 행복을 찾는 사람은 그곳에서 나보다 뛰어난 이들과의 경쟁 때문에 또는 너무 편한 직장이라면 권태로 인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은 누구하고 결혼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구는 아무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suitable helper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 안에서 돕고 사랑함으로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으로 행복해지려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세상에 완전한 배우자는 없고 또 그 사람도 부족한 내가 완벽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세상의 베데스다를 동경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번쩍 들어서 세상의 베데스다에 1등으로 던져줄 것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능히 우리를 베데스다에 일등으로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을 진정한 베데스다로 만난 분은 세상의 베데스다에 1등으로 들어가든 꼴찌로 들어가든 상관없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요 진정으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신자가 다시 과거처럼 세상의 베데스다에 매이며 사는 것은 하나님보시기에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과거의 종의 자녀처럼 세상 베데스다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빛과 소금의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된 날은 공교롭게도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39가지의 규례를 정해놓고 지켰습니다. 이러한 39가지의 금지 사항에 각 6개씩 해석을 붙여 234개의 조항을 만들어 사람들을 율법의 노예가 되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별로 쓸모도 없는 병자가 안식일 법을 어기며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에 분개하며 트집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엔 옷에 빈대가 있어도 털지 말라는 율법도 있는데 그들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은 안식일 법에 위배되므로 도로 누워 있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핍박을 하자 38병자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잘못보이면 사회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두려움에 심령이 마비되어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령했다며 예수님께 책임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선 성전에서 그를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더 심한 것은 예수님의 은혜까지 저버리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새 인생을 출발하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회복되면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은혜를 감당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선 우리를 회복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말씀을 주심으로 우리를 진정 열매 맺는 인생, 축복된 인생으로 인도해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선 과거 사고로 인해 평생 절망가운데 누워 있을 죄인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일으켜주시고 또 말씀을 전하는 목자의 인생을 살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후 은혜를 감사하고 감당하는 삶을 살기보다 건강문제 학과공부문제 결혼문제 최근엔 직장과 자녀 문제 등 당면한 현실문제해결에만 매이며 살았습니다. 세상 베데스다에 빨리 들어가기 위해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고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선 계속 말씀가운데 저를 세상 베데스다에서 해방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우쳐 주시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목자의 인생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항상 현실문제해결에만 매이며 양들을 제대로 섬기지 못함을 아시고 말씀공부 팀을 맡게 하시고 또 최근에는 메신저로 말씀을 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제가 매일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들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써 믿음을 가지고 세상 베데스다에서 절망하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요, 마침표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거듭날 수 있고 또 열매 맺는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먼저 성경말씀을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선 말씀가운데 살아 역사하십니다. 38중풍병자 말씀은 거의 매년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대표적인 3대 죄인으로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하지만 단지 2000년 전 예수님께서 38중풍병자에게만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설사 38년 동안 들어도 영접이 안 되고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또 간절히 찾는 심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나에게 주신 말씀임을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내속에 있는 중풍병적인 죄성과 헛된 희망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이 있다면 그 말씀은 내 속에 살아 역사하며 일어나 걷게 할 것입니다. 또 기도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나의 일방적인 간구나 요구가 아닌 영적대화입니다. 오히려 진정한 기도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문제 앞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찾고 구할 때 예수님께선 말씀을 통해 응답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또 일상생활 속에서도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신자의 삶의 갈림길이나 위기의 때나 축복의 때 어느 때든지 순간순간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또 말씀대로 인도함 받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세상희망에 매여 있거나 죄로 마음이 굳어 있으면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못 알아듣습니다. 걸어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회개하지만 둔감한 사람은 돌부리를 걷어차며 원망합니다.
  양은 초식동물 중에 가장 약한 동물입니다. 그 흔한 뿔도 없고 달리기도 못하고 시력도 약합니다. 하지만 양이 멸종되지 않고 번식할 수 있는 이유는 양은 청력이 발달하여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를 좇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의 생존의 문제요 번영의 필수조건입니다. 말씀을 깊이 사랑했던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나이다.” (시편 119;105)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음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인도하시는 길을 찾고 예수님의 말씀의 빛을 전하는 생명구원역사에 쓰임 받는 열매 맺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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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20강]내가 왕이니라 리스닝 2010-07-18 2593
491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590
490 누가복음 [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리스닝 2011-08-01 2589
489 요한일서 [2014년 요한1서 제1강] 성도의 사귐 관리자 2014-09-28 2587
488 누가복음 [2014년 성탄 제1강]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관리자 2014-12-07 2585
487 고린도후서 [2017년 고린도후서 제9강]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관리자 2017-12-03 2583
486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4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관리자 2017-02-26 2582
485 이사야 [2011년 이사야서 제17강]하나님과 결혼한 시온 관리자 2011-02-20 2582
484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9강]예수님의 기도 리스닝 2010-07-11 2579
483 누가복음 [2017년 누가복음 제22강]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관리자 2017-07-02 2578
482 요한복음 [2015년 요한복음 제7강]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관리자 2015-05-03 2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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