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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09 (일) 12:29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7년_누가복음23강-1.hwp (64KB) (Down: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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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제23강]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2017년 누가복음 제 23 강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말씀/ 누가복음 14:7-35
 요절/ 누가복음 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내면성과 영적 가치관, 사명에 대한 자세와 각오에 대해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열심히 주님을 좇는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고자 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영적 기준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부담스러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upgrade시키시는 주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믿음을 덧입기를 기도합니다.

1. 무릇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7-14)
  7절을 보십시오.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택하여 앉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상석에 앉아야 사람들이 자기를 높은 사람으로 대우하고 존경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 문제는 비단 바리새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높은 자리 증후군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를 동원하여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고자 하다가 다른 제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비유를 들어 낮은 자리에 앉는 연습을 하도록 교훈을 주십니다. 8,9절을 보십시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어깨에 힘을 주고 상석에 앉아 있다가 더 높은 사람이 왔을 때 끝자리로 쫓겨 간다면 이 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청함을 받았을 때 차라리 끝자리로 가서 앉으라 하십니다. 끝자리에 가 앉아 있으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평안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이 와서 겸손한 자임을 알아보시고는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10)
  예수님이 이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람들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높은 자리에 먼저 앉고자 눈치 보지 않고 자리다툼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스스로 높인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진다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주인이 겸손한 자를 초청하여 높은 자리에 앉게 할 때, 곧 주인이 세워주심으로 인해 높아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높은 사람은 하나님이 높이시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낮춘다는 것은 사람 앞에서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고 자복하는데서 오는 진정한 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가를 깨닫고 구속의 은혜를 마음에 간직할 때, 또한 자기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할 때 높은 자리를 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오히려 끝자리에서 섬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젊은 날 늘 큰소리치며 나서던 자였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한 후에는 아주 겸손한 종이 되어 교만해지려는 사람들을 잘 권면하였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5,6) 어느 날 Mother 테레사가 어린아이의 고름을 짜며 치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함께 살고 있던 한 사람이 그분의 고결한 삶을 보고 감명을 받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이나 높은 사람의 섬김 받고 사는 삶이 부럽지 않습니까? 수녀님은 일생 이런 삶을 사시는데 만족하십니까?” 수녀님은 대답하였습니다. “왜 부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그리고 ‘남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는 말을 더하여 주었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가정에서도 센터에서도 장막에서도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 은혜를 끼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앞에서 예수님은 잔치에 초청 받았을 때의 자세, 곧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이어서 이제는 초청하는 자가 되었을 때 어떤 마음자세로 잔치를 베풀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잔치를 베풀면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도로 청하면 갚음이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상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초청하라고 하십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이들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하고 또 도와주어도 도로 갚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초청할 때는 이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하게 됩니다. 또한 보상 받거나 도로 갚음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순수하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순수한 동기로, 온전한 사랑으로 힘든 자들을 위로하고자 초청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때로 손해의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손해 보는 일이 아닙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곧 이들을 초청하고 섬기는 것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되므로 예수님이 친히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대신해서 넘치도록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이를 믿을 때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고 계속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소자를 위해 냉수 한 컵을 대접하는 것도 상을 잃지 않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10:42) 우리는 give & take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은 온전히 베푸는 자세로 섬김이 필요한 자들을 잔치에 초청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큰 상을 받는 복된 자세입니다.

2. 큰 잔치 비유(15-24)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의인들의 부활과 그 날에 받을 복에 대해 말씀하시자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 잔치에 정통 유대인들만 참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잘 지킨 데다 고귀한 신분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에 근거하여 자기들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떡을 먹으며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큰 잔치 비유를 통해 당연히 참석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그 사람들이 스스로 이 은혜를 거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잔치는 황태자의 혼인잔치라고 했습니다.(마22:2) 초청장은 일 년 전에 이미 보내어졌고 초청 받은 사람들은 황공한 은혜로 알고 잔치에 참석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주인은 그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Mr. 백 요리사를 단장으로 진귀한 음식들을 준비하였고 모든 아름다운 음악과 연주와 신나는 춤과 연극까지, 또 돌아갈 때 손님들이 즐겁게 가도록 선물도 풍성히 준비해놓았습니다. 이윽고 잔치 날이 가까워지자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에게 다시 종들을 보내어 정중하게 초청하였습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 되었나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청함을 받은 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약속한 것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습니다. 이들이 잔치를 사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사람은 밭을 샀으니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어렵게 부동산을 매입하였으니 꼭 보러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는데 시험하러 가야하니 양해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셋째 사람은 자기는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할 것은 당연하고 ‘황태자뿐 아니라 나도 장가갑니다’ 자랑하며 거절했습니다. 세상일을 중요시 여기는 이들은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조금도 죄의식이나 문제의식이 없었습니다. 이들에 대해 주인은 심히 노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인을 무시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 청함 받은 자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많은 특권과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세상 만민과 구별하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천국 잔치를 예비하시고 정중하게 초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러나 그들은 천국잔치를 귀히 여기지 않고 세상일을 더 중요시하고 자기 뜻대로 행했습니다. 이는 잔치를 준비한 주인을 무시하는 처사였습니다. 이들은 주인의 마음과 배려를 가볍게 여기고 무책임하게 행했습니다.
둘째로, 영적인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이들은 잔치에 참여하는 것보다 새로 산  밭을 살피고 소를 시험하고 아내를 기쁘게 하는 일을 더 중요시하였습니다. 천국 잔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을 만나도록 말씀 잔치를 준비하고 초청하면 양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거절합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방학도 없이 스펙 쌓기에 바쁘고, 젊은 날 세상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여기저기 다니기에 바쁩니다. 또 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자 하니 시간에 쫓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말씀잔치가 자기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도 모르고 말씀을 뒷전으로 하고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임금의 천국잔치를 거절하는 것은 한번 말씀 듣는 것을 손해 보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맺기를 거절하는 것이요 결과적으로 구원과 영생을 잃게 되는 심각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손해를 볼지라도 천국 잔치를 거절하는 인생의 가장 큰 손해를 보지 않도록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 잔치의 초청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특권을 누리는 종들이 되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이 주신 특권과 은총을 깨어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뜻밖의 종의 보고를 들은 주인은 심히 노했습니다. 주인과 맺은 약속을 무시하고 주인의 사랑과 정성을 멸시하고 잔치를 썰렁하게 만든 자들에게 주인은 단호히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빛난 잔치에 새로운 사람들을 초청하도록 하였습니다. 주인은 준비된 잔치에 자격 없는 이들을 초청하여 임금의 잔치의 참여하는 특권과 축복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자리가 남은 것을 알고 주인은 다시금 더 먼 곳까지라도 가서 임금잔치에 특별한 은총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은 종들을 길과 산울타리 가로 보내어 한 사람이라도 더 강권하여 데려와 주인의 잔치를 맛보도록 하라고 명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길과 산울타리 가는 성 밖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자격이 없었으나 유대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의 은혜를 덧입게 하셨습니다. 특히 주인은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하였습니다. 주인은 강권하여 청해서라도 그들을 데려와 잔치에 참석케 하라고 명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인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자리에 참석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잔치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이 잔치에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잔치는 구원과 영생의 잔치입니다. 그곳에는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생명을 체험하는 잔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잔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주인은 그의 종들에게 강권하여 데려오라 명하십니다. 이곳에 참석한 우리 각자가 모두 강권하는 사랑으로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된 산 증인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을 기억하고 양들도 이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어떤 자매님이 중년 남자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거절하는데도 끈질기게 전도하자 남자는 바쁜데 귀찮게 한다고 팔을 휘둘렀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이 가지고 있던 성경책이 땅에 떨어지고 전도지가 바람에 날려 흐트러졌습니다. 사람들은 자매님이 어떻게 하는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떨어졌던 성경책을 다시 집어 들고 곧 바로 그 남자에게 달려가면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래도 예수님을 믿어야 해요.”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어떻게 그렇게 끈질기게 전도를 할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암 환자를 100퍼센트 치료하는 병원이 있다면 암환자를 만날 때마다 그 병원으로 꼭 가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간절히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인생들이 구원받도록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아는 자였습니다. 우리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여 양들이 구원받도록 돕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처음 청함을 받았으나 거절한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하나도 천국잔치를 맛볼 수 없었습니다.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아주 작은 일이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자는 구원을 놓치는 큰 낭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25-35)
  25절을 보십시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가고 있지만 예수님은 돌이키사 이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자세를 가르쳐주십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의 행렬을 따라다닌다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제자의 자세와 각오로 좇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누구보다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은 심히 부담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가족들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나 부모 형제를 사랑하고 더욱이 자기 자신은 끔찍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면 부모, 처자, 형제,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마음의 첫 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37절에서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이라고 한 것을 볼 때 인간중심, 혈연중심의 관계성을 절대시하고 애착을 갖고, 또 자신에 대한 애착에 집중하는 것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가장 우선시하고 예수님과의 관계성을 가장 절대시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때 주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로 인해, 자신의 명예심과 욕심으로 인해 주님의 은혜를 저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합니다. 27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당시 십자가는 중죄인을 처형하는 사형도구였습니다. 이는 곧 수치와 멸시와 고통을 상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하는 사명의 짐과 고난을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가 지는 십자가는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줍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제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부담 없이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십자가와 부활의 길이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을 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아무 연관이 없는 내용 없이 껍데기만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합당치 아니하다 하십니다. 여름 수양회를 준비하는 우리들이 마땅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땀 흘리며 열심히 주님을 따르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모든 소유를 버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28-32절에는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로, 망대 비유입니다. 망대를 지으려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 족할는지 먼저 계산을 해야 합니다. 만일 기초만 쌓고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의 비웃음거리만 될 것입니다. 제자의 삶도 마음준비 없이 하면 도중하차하게 됩니다. 둘째로, 전쟁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전쟁하러 나가는 임금과 같습니다. 전쟁에서 아군의 수는 1만 명이고 적군은 2만 명일 경우 적은 숫자로 많은 적을 이길 수 있을까 잘 계산한 다음 승산이 있을 때 싸워야 합니다. 승산이 없으면 차라리 멀리 있을 때 화친을 청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잘 계산해보고 안될 것 같으면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전쟁에 임할 때 힘이 부족하면 아예 타협하라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먼저 마음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뜻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제자의 삶에 최고 가치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자세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세상에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뜨거운 중동지방에서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낼뿐 아니라 방부제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음식물은 썩고 부패합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고 사회를 정화시키는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짠 맛은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절대복음신앙입니다. 이런 각오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 녹아버려 짠맛을 잃고 타락하게 됩니다. 어느 잡지에 독자들을 위하여 이런 격려의 글이 실렸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힘들고 지치거든 이 사람을 생각해보십시오.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열었지만 실패, 남에게 빌린 돈을 갚는데 걸린 시간은 15년, 정치가가 되어 상원의원에 입후보하였지만 두 번 낙선, 하원의원에서도 두 번 낙선, 훌륭한 연설을 했지만 신문의 그치지 않는 비난, 벌레를 보는 듯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 그러나 그는 결국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에이브라함 링컨입니다. 인생은 도전하는 것입니다. 실패해도 도전하고 성공해도 또 도전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십시오. 도전하는 만큼 아름다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성공한 만큼이 아니라 도전한 만큼 아름다운 인생, 짠맛 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 고난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짠맛을 내게 하는 source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천국 잔치에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할 일이 없어 빈둥대며 방황하는 영혼들이 참석하여 함께 구원의 은혜를 받도록 초청하십니다. 주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우리를 길가와 산울타리 가로 보내시고 강권하는 사랑으로 죄인들을 초청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르는 종들이 되어 시대의 소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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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3 누가복음 [2014년 성탄 제1강]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자 관리자 2014-12-07 2750
492 이사야 [2015년 성탄 제1강]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관리자 2015-12-06 2749
491 누가복음 [2011년 여름바이블캠프준비특강(1)]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리스닝 2011-08-01 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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